초기,중기 바로크 음악
초기 바로크 음악
1640년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르네상스 말기, 지오반니 드 바르디의 후원 아래에 인문학자, 시인, 음악가들은 카메라타라는 모임을 결성해 음악과 연극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를 이어간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음악극을 가장 뛰어난 종류의 예술로 보았고, 폴리포니와 기악음악을 거부하며 키타라 반주에 독주가가 노래하는 종류의 음악인 모노디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갔다. 자코모 페리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다프네Dafne》, 《에우리디체L'Euridice》에서 선보임으로써 오페라와 바로크 음악의 효시를 알렸다.
피렌체에서 이처럼 모노디가 발달할 때,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위시한 베네치아 악파에서는 기악곡이 발달한다. 리체르카레, 환상곡, 칸초네 등이 여기서 발달하였으며, 이후 독일에서 온 하인리히 쉬츠가 이러한 베네치아 악파의 음악을 배워 독일에 새로운 음악을 전파한다.
또한 이 시대에는 폴리포니의 근음을 이루어주며 화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인 통주저음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통주저음을 보고 하프시코드, 파이프 오르간, 류트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보이싱을 하여 베이스라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카를로 제수알도 등의 작곡가들은 자연스레 화성 진행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셋온음을 악마의 음정으로 분류하는 등 가시적인 연구 성과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음악은 선법보다 조를 기준으로 하는 조성을 따르게 되었고, 이로써 시대의 격변이 발생한다. 조성감을 위해 작곡가들은 멜로디의 진행을 넘어 화성 진행을 신경쓰게 되었고, 조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종지 등의 작곡기술도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음악적 변화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 시대의 폴리포니와 통주저음을 변용하여 프리마 프락티카와 세콘다 프락티카라는 장르를 각각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는 《오르페오L'Orfeo》와 《포페아의 대관식L'incoronazione di Poppea》에서 여실히 드러나 평단의 주목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몬테베르디가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화성 진행에 음악가들이 관심을 기울지면서 관용적인 주법, 관용적인 화성의 사용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류트에서는 불규칙적인 방식으로 불협화음을 끼워넣는 방식의 주법이 등장하고,이어 루이 쿠프랭과 장 르 롱 달랑베르는 쳄발로에 이러한 연주법을 도입시킨다. 이러한 영향은 이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심지어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중기 바로크 음악
장바티스트 륄리
루이 14세로 대표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됨에 따라 부와 권력이 궁중으로 집중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음악의 중심도 교회에서 궁중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큰 교회 회랑이 아닌 궁중의 방에서 연주되기에 적합한 실내악이 탄생한다.
장바티스트 륄리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다. 륄리는 당시 프랑스 궁정에 고용된 유일한 작곡가로, 최초의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당시 기다란 지팡이로 박자를 지도하며 지휘하였다고 전해진다. 륄리는 현악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는데, 이 조합은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를 거쳐 현대에도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서는 1630년대에 칸타타, 오라토리오, 오페라라는 새로운 성악 형식이 등장하고, 가사와 일치하도록 멜로디와 화성을 배치하는 기법인 음화(Tone painting)가 발명됨으로써 크게 호평을 받는다. 더욱 단순하고 짧은 멜로디들이 나타나고, 사라방드나 쿠랑트 등의 춤과 어우러지는 리듬을 띄기 시작한다. 화성도 단순하고 가벼워지는데, 통주저음이 사용되던 베이스라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성부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화성의 사용이 단순해짐에 따라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독립적인 음악 형식으로 나타난다. 쟈코모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가 유명하다.
또한 이 시기에 아르칸젤로 코렐리가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기법과 교수법을 개발하고, 합주 협주곡 등 오롯이 악기로만 구성된 음악들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륄리의 활약이 궁정 내부에서만 이루어진 것에 비해, 코렐리는 작곡한 음악의 악보를 유럽 전역에 출판하고 연주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코렐리는 협주곡과 트리오 소나타에서 음량을 급격하게 전환하고 빠른 악장과 느린 악장을 번갈아 배치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의 제자 안토니오 비발디에서 이어지며 이후 소나타 양식의 규범이 된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반면 독일에서는 디트리히 북스테후데가 교회 음악의 전통을 이어간다. 북스테후데는 교회에 부임하여 각종 전례에 따른 음악을 작곡하는 등 전통을 이어간다. 교회 외에서는 아벤트무지크(영어:Abendmusik)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기획했는데, 여기서 발표된 종교극들을 오페라와 동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